나, 이태경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학급위원으로 추천을
받는 제 2의 기적을 이루어냈어나 그 때에는 성적으로 학급위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원만한(?) 대인관계로 학급위원을 뽑는 때였다. 학급위원이라는 감투를
벗어던지고, 4월에 진주 봉곡 초등학교로 전학을 왔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곳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전학온지 사흘만에 담임선생님이 보고 있는 곳에서
친구와 칼부림을 한관계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나, 이태경은 초등학교를 졸업한이후 진주 대아중학교에
진학하였으며, 고입을 며칠 앞두고 개천예술제 구경을 하는중 담임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는 사건을 겪었고, 또한 졸업할 때까지의 시간이 그리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고입 시험당시 평소때보다 40점이나 많은 점수를 얻어 기적적으로 고입시험에 통과했으나
기적의 힘은 고교 1학년 시절에 힘을 잃고 줄곳 56명중 45등을 차지했었다. 진주고등학교
재학당시, 고 3시절, 진주고등학교 축구부가 대통령금배 결승에 친출하는 이변을
일으켰고, 2학년이 단체응원을 하기로 되어있었으나 강모 상형, 허모 성은, 지모
창호등의 불량소년들과 함께 민중반란을 일으켜 2학년 대신 3학년이 응원하러 가는
사건을 만들기도 했으며, 고 2시절 황모 성의 수학선생님으로부터 뺨을 약 50-60대
맞은 것을 제외하면, 아주 모범적인 생활을 했다.
나, 이태경은 역시 기적적으로 대입에 성공했으며, 입학을
하기도 전에 TIME지를 정기구독하는 열정을 보였으나, 자세한 내용을 알고 보면,
TIME본사에서 일하는 아줌마의 목소리에 속아 충동적으로 정기구독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 이태경은 1996년 7월 26일 타임반과의 잠깐의 작별
인사를 나누고 군대에 입대했으며, 그 이후 집에 자주 내려온 관계로 혹시 방위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으며, 지금은 경상 TIME 연구회 7학년으로 재학중이며,
졸업과 동시에 사회에 큰힘이 될 수 있는 인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